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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
우리는 언제 마음이 일렁일까? 가을밤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싸리 위에 맺힌 이슬방울을 바라보는 동안 무엇을 느끼게 될까. 레벨나인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특별전 ⟪일본 미술, 네 가지 시선⟫의 일환으로 기획·제작되었다. 미디어는 일본 미술의 세 번째 시선 ⟨찰나의 감동⟩에 자리하며 차경을 통해 정원 풍경을 감상하듯 잠시 머무는 경험을 제안한다. 관람객은 미디어 주변을 천천히 거닐며 옛 시인들의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일본 미술, 네 가지 시선⟫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 등 고서에 수록된 와카를 인터랙티브 디지털 미디어로 구현하며 고전 시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레벨나인은 단지 일본의 고전 시가 와카(和歌)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정서를 부드럽게 전달하는 데 주목한다.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은 와카가 적힌 열다섯 개의 탄자쿠를 만난다. RFID 태그 역할을 하는 탄자쿠는 와카를 적는 데에 즐겨 사용한 단책(短冊)의 형태를 살려 제작했으며, 결이 있는 종이를 덧대 관람객이 따뜻한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탄자쿠에는 “손짓하는 억새풀”, “꾀꼬리 우짖는 들녘”, “헤매 도는 나비” 등 각 와카의 구절이 적혀 있다.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열다섯 가지 자연물을 통해 미디어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으로 설계했다.
관람객이 탄자쿠를 리더기 위에 올리면 낮은 진동과 함께 10인치 터치 디스플레이와 LED 디스플레이 화면이 반응하고, 와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래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관람객이 미디어 가까이 다가가면 잔잔한 물결이 일며 그 주변으로 와카 시구가 드러난다. 시는 읽는 호흡에 맞추어 두 번에 나누어 등장하며, 관람객이 자리를 뜨면 천천히 사라진다. 계절의 변화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아름다움처럼,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의 센서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섬세하게 반응한다.
관람객과 미디어 간 상호작용은 겹겹이 쌓인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미디어는 선형적인 정보 탐색보다 전시 공간을 산책하며 자유롭게 감상하는 경험을 유도한다. 관람객의 시선은 주변 유물에서 와카로, 다시 와카에서 유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교차한다. 그러므로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은 제2부 ⟨절제의 추구⟩에서 “잔벚꽃무늬 고소데”를 바라보는 경험과도 닮아 있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본다. 관람객이 둘 사이를 오가는 동안, 천 년 전 쓰인 와카와 2025년 레벨나인이 재해석한 와카가 겹친다.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의 시각적 컨셉은 일본 미술을 이루는 장식성과 비장식성에서 출발한다. 일본 미술에서는 헤이안 시대 귀족 문화의 영향으로 금박 병풍에 그림을 그리고 금, 은으로 꾸민 종이에 와카를 적는 등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한편으로 절제된 멋을 추구하면서 단정한 공예품과 투박한 찻잔이 같은 시대 유행했다.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에서는 이처럼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이는 외형적 특징에 주목해 옛 일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꾸밈의 열정⟩과 ⟨절제의 추구⟩를 한데 담았다. 전반적으로 여백을 살리는 간결한 구성을 바탕으로 와카의 심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그래픽을 그렸다. 옻칠로 그림을 그린 뒤 금가루를 흩뿌리는 마키에(蒔絵)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금빛 그래픽은 전시 공간에서 미디어를 둘러싸고 있는 “가을풀을 그린 병풍”, “금가루를 사용한 벼루 상자”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특히 각 와카에 대응해 등장하는 그래픽은 은은한 애니메이션 효과와 더불어 “무사시노 들판을 그린 병풍” 속 들판에 피어 있는 억새를 차분히 감상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가구 디자인은 전시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낮고 단정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디스플레이 상부는 바닥에서 떠 있는 듯한 구조로 구성되어 공간에 부유하는 인상을 준다. 낮은 높이는 미디어를 내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게 하여, 와카를 읽는 경험이 고요한 수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은은한 빛을 내는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은 하나의 빛나는 오브제로 기능하며 관람객이 머물고 바라볼 수 있는 미디어로 자리 잡는다.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국립중앙박물관
2025.06.17.~08.10.
인터랙티브 미디어
⟪와카의 풍경, 일렁이는 마음⟫
연출 김선혁
아트 디렉션 김정욱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장보람
그래픽 & 모션 디자인 오지승
가구 디자인 Studio Ahnz
소프트웨어 개발 설정민
영상 촬영 & 편집 오지승
컨셉 개발 박수빈
하드웨어 테크니션 김석환
도움 주신 분들 정해수, 류민주, 김혜정, 라해린
레벨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