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지 이케다 로그북

⟪Ryoji Ikeda Logbook⟫은 2025 ACC FOCUS ⟪료지 이케다⟫ 전시 연계 콘텐츠로 기획·개발되었다. 로그북(logbook)은 1574년 윌리엄 본의 항해술서에 등장한 개념으로, 통나무(log)를 끈으로 매달아 선박의 속도를 측정하던 방식에서 유래한다. ⟪Ryoji Ikeda Logbook⟫은 관람 여정을 항해에 비유하며, 전시장에서 떠오르는 감정을 기록한다. “감정 기록하기”는 작가와 전시 경험의 세계를 연결하고, 아카이브 되어 데이터의 앙상블(ensemble)을 이룬다.

료지 이케다는 자신을 composer, 즉 작곡가이자 구성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료지 이케다의 세계는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날씨 데이터부터 NASA의 우주 공학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그러나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0과 1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는 무리수에 가깝다. ⟪Ryoji Ikeda Logbook⟫은 ‘사이’의 감정을 포착한다. 료지 이케다의 말처럼 작가가 작품의 절반을 구성하고 나머지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면, 디지털 가이드의 역할은 관람객의 관점을 넓히고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하는 데 있다.

⟪Ryoji Ikeda Logbook⟫은 전시를 경험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섬세한 언어로 전시를 경험하는 “감정 기록하기”와 작품의 맥락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품 해설 보기”다. “감정 기록하기”에서 관람객은 감각적 몰입을 유도하는 질문을 마주한다. 콘텐츠는 기쁨, 슬픔 등 일반적인 감정 명사 대신 감각과 감정의 사이를 탐색할 수 있는 단어를 제시한다.

단어는 감정의 온도, 움직임, 거칠기, 크기 등 다양한 속성으로 분류된다. 질문은 두 가지 유형으로, [1] 감정을 점차 세분화하며 구체적인 이해에 도달하는 방식과 [2] 원하는 단어를 우연히 발견하는 스와이프 방식이 있다. [1]에서는 “데이터의 규모가 어떻게 느껴지세요?”라는 질문에 “커요”라 답하면, “아득해요”, “광활해요”처럼 조금 더 세부적인 표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구체화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료지 이케다에 대한 감상은 곧장 감정으로 직결되기보다, 신체 감각에 기반한 표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같은 빛의 궤적을 보며 누군가는 ‘휘몰아친다’는 인상을, 누군가는 ‘쪼그라든다’거나 ‘서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택한 단어는 그 강도와 특성에 따라 고유한 형태를 이룬다. 기록을 마치면 감정이 쌓이고 변화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Ryoji Ikeda Logbook⟫의 아카이브는 관람객이 많이 선택한 단어 순으로 데이터를 제시하는 등 여러 기능을 포함하며, 개인의 기록을 넘어 서로 다른 관람객의 세계가 교차하는 공간이 된다.

료지 이케다는 창작 과정에서 언어가 가진 본질적 한계를 언급하며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웹사이트를 소개하는 과정 또한 그렇다. ⟪Ryoji Ikeda Logbook⟫에서 작가의 compose는 곧 작곡이자 구성이며, 관람객의 perform은 연주이자 수행이다. 기록의 ensemble은 합창이자 함께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한 단어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말을 덧붙이며 더듬더듬 거리를 좁혀볼 수 있다. ⟪Ryoji Ikeda Logbook⟫을 통해 관람객이 자신의 감정에 이름 붙이며 이해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