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문지방

프로젝트레벨나인, <밤의 문지방>, 멀티프로젝션, 디지털 패널, 나무판자, 천, 구슬, 렌즈, 가변형 사이즈, 2019

 

활옷을 바라보고 있으면 배어나오는 힘만큼이나 파고드는 힘을 마주하게 된다. 배어나오는 화려함이 색으로 이루어진 풍경이라면, 실 하나 하나 파고드는 치열함은 아마도 침묵을 포함하여 소리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옷을 만들었던 사람, 바랐던 사람, 그 옷을 입었던 사람, 입은 모습을 지켜보았던 사람, 그리고 간직해 온 사람들의 소리는 치열함이 되어 색과 문양을 서로 잡아당기고 있다.   

 

우리의 옷과 그 화려함을 담은 풍경이야 언제나 익숙하다. 그러나 활옷이 하나의 문(闊)이라면, 그리고 문지방에 서고 보면 화려함은 그저 순간이다. 내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통과하는 느낌, 지금 여기에서 다음으로 파고드는 경험에 가깝다. 팔이 통과하는 옷소매 끝에는 다른 세계가 놓여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은 언제나 삶에서 취하는 연행의 일부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드라마, 연극의 전부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활옷을 품고 바라는지 모른다.

 

여기 삶을 지켜내는 수많은 문들, 통과의례들이 있다. 우리는 문지방 위에서 넘어서려고 치열하게 내달린다. 화려함과 고통스러움, 치열함과 안도감 사이에서 문지방을 넘을 수 있다는 환상, 혹은 넘었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혼례의 문은 사라진 오늘날이지만 우리는 매일 밤 다른 통과의례의 문지방을 넘고 있을지도 모른다. 씨실을 닮은 낮 동안, 날실을 닮은 밤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내달려지고 있다. 그 연행의 질주경 안에 색의 만화경이 스쳐지나간다.

 

책이 읽는 사람에 의해 열리듯이, 옷은 입는 자에 의해 날아갈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활옷을 입고 날 수 있다. 삶에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혼례)과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화려했던 옷을 수의로 삼는 순간(상례)이 맞닿아 있다면 문지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배어나오는 힘과 파고드는 힘 사이에서 딛고 서 있는 한 문지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문지방에 선 사람들

– 마르타, 거지, 아이들, 그리고 모두

 

당신은 문지방에 서 있다

나는 결정적으로 진실과 환상의 차이를 알지 못 한다 ❶

어둠 속에서 아무런 일이 나지 않은 것처럼

이제 막 태양이 유난히 밝게 떠오르고 있었다

당신의 모든 아이들이 노래할 수 있는 건 아니었고, ❷

나는 지독히도 이 어둠을 뚫고 싶었다 ❸

당신이 죽자 문지방도 사라져 버리고, ❹

오래도록 당신이 입었던 직물은

꽃들, 하늘들, 떨어지는 태양들처럼 아무런 말이 없었다 ❺

오 눈이여, 어둠을 향해 부풀어라 ❻

 

직조의 글쓰기

❶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 에드워드 올비

❷ 죽은 아이들의 노래, 프리드리히 뤼커트

❸ 틈입자, 모리스 메테를링크

❹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❺ 이중의 방, 샤를 보들레르

❻ 랜더로드의 이민, 기욤 아폴리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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